짧은 낙서 2017. 8. 10. 01:10

RAIN

투둑 - 툭 -

아, 비가 오네.
비가 온다, 종현아.
많이 보고싶다. 거기는 어때? 괜찮아?
나는 네가 정말 많이 보고 싶은데, 너는 어때?
오늘처럼 비가 올때면 네 생각이 나.
비가 많이 오네.
오늘 낮에 너무 더웠는데, 창문을 다 열어놓으니까 시원해. 내 마음같아. 너무 차갑고 시려와.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네 생각에 눈시울이 너무 뜨거워, 종현아. 울고 싶지 않은데,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이건 눈물이겠지.
예전에는 비가 오는 날이 너무 행복했었는데.
알바하는 너를 데리러 나가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어. 너도 알거야. 너를 데리러 나갈 때, 항상 웃고 있던 내 모습을. 검은 우산 아래 행복하던 우리를.
정말 미치도록 보고싶다.
미안해, 종현아.
미안하단 말 밖에 할 수 없어서 더 미안해.


오늘 낮에 또 비가 왔어, 종현아.
비가 오면 네 생각이 더 선명해져서 좋은데, 너무 아프다.
누가 날 죽여줬으면 싶을 정도로 아파. 심장이 아려. 오늘은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 숨이 안 쉬어져서 주저앉을 뻔 했어.
종현아, 넌 거기서 항상 웃고 있는거지?
나는 이렇게 아파도, 너만은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
많이 보고 싶어.
너무 이기적인것 같지만, 날 보게 된다면 잘 지낸다고, 너무 아파하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줘. 부탁이야.
한마디만 해주면 내가 숨을 쉴 수 있을것 같아. 통증이 덜해질것 같아.
정말 그립다, 종현아.


오늘 짐 정리를 하다가 너와 찍은 사진이 있는 사진첩을 열었어.
요 며칠 비가 오지 않아서, 조금 살 것 같아 큰 맘 먹고 열었는데 열자마자 다시 닫아버렸어.
첫 페이지에 하필 너 대학교 졸업사진이 있더라.
왜 하필, 첫번째 페이지에 그걸 뒀어.
대학 등록금만 아니었어도 네가 지금까지 내 곁에 있었을텐데.
대학 등록금만 아니었어도 대출을 안 받았을거고 결국 힘들게 알바 할 일도 없었겠지.
아니, 우리 집이 조금만 더 넉넉했어도. 아니, 내가 널 만나기 직전에 내가 모아둔 돈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오지만 않았어도 네가 내 곁에 있을텐데.
한가지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사진이 빛을 바래가기 시작하더라. 네가 그렇게 긴 시간동안 알바를 한 걸 생각하니까 너무...아, 정말 왜 이러지. 나 다시 눈물이 난다.
네가 가기 전에 내 손으로 맛있는 밥 한번 못 해 먹이고, 하다못해 비싼 밥 사주지 못해서 진짜 너무 후회스럽다. 나중에 보니까 너 너무 말랐더라. 미안해.
아, 다시 비가 온다.


오늘 오랫만에 차분한 느낌이 들고 숨통이 좀 틔여서 너와의 인연을 정리해보았어. 우리 긴 시간이었지만 너무 한 게 없더라. 내가 대학교 2학년에 유럽여행을 다녀왔으니 우린 대학교 3학년때 만났고, 그때 넌 대출을 받았지. 우리가 사랑하게 된 게 4학년이었지?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살고, 너는 알바하고 나는 곡을 쓰고. 그리고 27살때 이별. 알바를 끝내던 그 날 하필... 정말 아직도 그 차주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 그 사람은 아직 감옥에 있어. 5년형 선고받았었으니까, 이제 3년 남았네. 그 사람 때문에 내 눈앞에서 피를 흘리던 너를 생각하면 정말 5년은 껌이야. 무기징역이었어도 시원하지 않았을 거 같긴 하지만. 너와 만난 5년이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데. 사실 히트곡도 다 너의 덕분이야. 종현이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예쁜 가사를 쓰고, 예쁜 노래를 만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해. 지금은 그런 노래가 전혀 써지지 않아. 아예 곡이 써지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내가 대학교 3학년 중반까지는 너무 막막했었어. 내가 가사를 유별나게 잘 쓰는것도 아니고, 멜로디를 어마무시하게 잘 뽑는것도 아니고. 정말 다 네 덕분인데. 그 전까지는 무채색이었는데, 물감을 들고 내게 다가와 무지개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어줘서 고마워. 여하튼.. 너무 보고싶다.


안녕, 종현아.
이게 내가 쓰는 마지막 편지야.
오늘 정리 다 마쳤어.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쓴 곡 주고 오는 길이야. 아마 내 인생의 마지막 곡이겠지. 굳이 예쁜 사랑 노래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으니까 노래가 써지더라.
다시 비가 오네. 참, 무슨 심장이 자동반사야. 욱신욱신 아파온다.
조금만 기다려, 곧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그곳으로, 너와 마주보고 손잡고 웃을수 있는 그곳으로.

잠시만 안녕, 곧 다시 만나자.
사랑해 , 종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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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WARTS! 4

아침이 밝았다. 본격적으로 호그와트에서의 하루가 시작이 된 것이다. 다행이도 페리스테라이트는 멀쩡히 목에 잘 걸려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민기와 연회장으로 내려가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풍족한 만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배불리 배를 채운 뒤, 기숙사 반장인 닉에게서 시간표를 받았다.

"월요일, 변신술, 마법의 역사, 어둠의 마법 방어술, 마법약.."
"첫날부터 빡세네."

민기가 한숨을 푹 쉰 뒤 말했다.

"기숙사 올라가서 3교시까지 가방이나 챙기자. 4교시는 점심 먹고 난 뒤니까... 오전에 왔다갔다 거리기 귀찮잖아."
"그래. 그러자."

"그런데 뭐뭐 챙겨야 하지?"

기숙사로 들어온 뒤 짐가방을 활짝 열어놓고 민기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뭐, 일단 교과서들하고 깃털펜, 잉크, 노트 정도면 되지 않을까? 첫날이니까. 뭐 딱히 가져오라고 공지한것도 없었고."
"그건 그렇네."

두 소년이 가방에 짐을 챙기는 사이, 시계는 수업 시작 10분 전을 가르키고 있었다.

"민기야! 다 챙겼어?"
"아직! 나 잉크를 어디다가 뒀는지 모르겠어.."
"내꺼 빌려줄게 빨리 가자! 10분전이야!"
"뭐?!"

민기가 시계를 바라보더니 빛의 속도로 늘어져 있던 책을 가방에 집어넣고 외쳤다.

"뛰어!"

시간이 3분 남았다.

"아, 그런데 변신술 강의실이 어디지? 분명 2층은 맞는데! "
"헐, 그것도 모르고 뛰어온 거야?"
"아, 몰라! 이렇게 넓을 줄 몰랐지!"

바로 그 때, 익숙한 아이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종현이 바로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뭐, 뭐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저기 혹시 그.. 변신술 강의실이 어딘지 알아?"
"변신술?"

민현이 황당한 듯 종현과 뒤에 서 있는 민기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첫 시간 변신술이야?"
"어어..."
"뛰어야겠네. 거기는 4층 한가운데에 있는 교실인데? 움직이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4층 중에서 가장 큰 문 찾으면 돼. 여기는 마법의 역사 교실 근처야."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 종현군, 민기군. 왜 10분이나 늦었는지 이유를 좀 들어 볼까요?"
"저.... 죄송하지만 처음이라 길을 헤맸습니다."
"2층 마법의 역사 교실인 줄 알았습니다.."
"이런이런, 모르고 있었나요?"
"네.. 죄송합니다."
"아니, 휴게실 벽난로 옆에 강의실 위치가 다 붙어 있는걸 보지 못하였나요?"
"네..? 못 보았습니다."
"그런..게 있었나요?"
"휴게실 벽난로 옆에 강의실 지도 본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이런, 그럼 다들 어떻게 교실을 찾아 온 거죠?"
"..교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선배들한테 물어보았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성을 둘러보다 위치 파악했습니다."
"<호그와트의 역사> 책에서 지도가 나와있었어요!"
"다른 기숙사의 친구에게 물어보았어요."
"지도가 붙어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네요?"
"네에!"
"아이고, 내가 어제 코지네스 군에게 지도를 주고 꼭 붙이라 단단히 일렀건만... 알겠습니다. 오늘은 지각을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하지만 다음부터는 한명 지각할때마다 5점 감점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종현군, 민기군, 자리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하던 수업을 마저 하죠. 변신술이란, ..."

"하암, 진짜 첫 시간부터 피곤해 죽겠네. 맥고나걸 교수님도 참 대단하셔. 교장에다, 변신술 강의까지 하시고, 아까 말씀하시던거 보니까 반장들한테 나눠주는거 일일히 다 하시는 모양이던데.."

민기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나저나 2교시가..."
"마법의 역사. 아까 거기."
"그래. 그리핀도르 탑 얼마 안 머니까 너 잉크만 찾아서 가자."
"그래."

"그런데 나 진짜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어."

민기가 가방을 뒤지다가 투덜댔다. 잉크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무슨 색인데?"

종현이 옆으로 와 쭈그려 앉으며 물었다.

"검은색. 딱히 다른 색은 안 쓸 것 같아서 검은색만 샀었거든."

가방의 모든 소지품을 꺼내도 보이지 않자 민기가 한숨을 푹 쉬며 종현을 쳐다본다.

"친구야, 부탁 좀 하자."
"응?"
"우리 부모님은 머글이시잖아. 너 어머니한테 부엉이 보내서 잉크 구입좀 부탁드리면 안될까?"
"어, 뭐 안될건 없지. 오늘은 일단 내꺼 써. 가자."
"그래."

그들이 그리핀도르 기숙사 밖을 나가자, 어디서 불어 온 건지 모를 바람에 날려 커튼 사이로 소름돋게 새까만 잉크병이 하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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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길 2017. 8. 6. 00:20

황제의 길 3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종현은 기약 없이 계속 궁에 있었다. 제가 황자들의 운명을 다 제대로 읊어 주어야 궁을 나갈 수 있을 듯 싶었다. 아니, 그래도 나가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았다. 마음이 복잡해 본가에서 가져왔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해져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쾅 -

"황자 전하! 3황자 전하! 아무리 급하셔도 어찌 이리...!"
목소리에 노기가 찬 진상궁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문을 부서져라 힘차게 열고 종현의 방 안으로 들어온 3황자 시영이다.

"종현아! 사흘 뒤가 내 생일이다."
"아,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도 좋아 생일까지 외운 게냐? 놀랍구나."

아니요, 궁궐에서 살아남으려 그쪽 형제들 이름 특징 생일 등등 달달 외웠습니다만..

"내 생일 연회가 연각에서 열릴 게다. 올 것이지?"
"꼭 가야 되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그럼, 내 생일도 알면서 오지 않을 심산이었느냐?"
"갖고 싶으신 선물을 말씀해 주시면 준비해 가겠사옵니다."
"흐음, 갖고 싶은 선물이라... 네가 보기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으냐?"

종현이 아차 싶다. 그래, 명색이 제국의 황자인데 못 가진 것이 있을까.

"미처 생각을 깊게 못 했나이다. 송구하옵니다.."
"아니, 송구할 것 까진 없고, 너만 오면 된다. 꼭 오너라. 알겠지, 응?"
".....예."
"그럼 우리 예쁜 종현이 사흘 뒤에 보자꾸나!"

3황자 시영이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나선다. 종현은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아, 저런 개망나니 같은...

"괜찮으십니까?"

서둘러 종현에게로 와 안색을 살피는 진상궁이다.

"예, 저는 괜찮습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만..."

말끝을 흐리며 방금 시영이 박차고 나간 문을 죽일듯 노려보는 진상궁. 종현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진상궁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정말 괜찮습니다. 머리가 조금 아파서 그러니, 산책을 조금 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들어오시면 따뜻한 차와 다과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안쓰러움과 따뜻함이 뒤섞인 진상궁의 눈빛에 종현은 공연히 본가의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나올 뻔 했다.





황제의 길
아름다운 8황자, 민현이 걷는 길





야속하게도 3황자 시영의 생일날이 밝아버렸다.

"아으으.... 결국 아침이네."

괜히 침상에서 늦게 일어나고, 밍기적밍기적 느리게 씻고, 밥도 먹는둥 마는둥 느리게 먹어 갔다. 평소 같았으면 잔소리를 하거나 눈치를 주었을 진상궁이지만, 지금 죽을맛인 종현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조용히 옆에서 밥 먹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며 허비한 시간이 두 식경. 마침내 종현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뎌 연각으로 향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고, 숨을 훅 들이마쉬며 연 연각의 문 안에는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지고 있다. 종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찾아 앉으려는 그 때.

"여어~ 우리 종현이다!"

술에 취한 3황자가 종현을 알아보았다.

"종현이 어디가니~ 여기 바로 내 옆에 자리가 비었는데!"

자신의 자리 옆 빈 자리를 탕탕 치며 호탕하게 웃는다.

"내가 일부러 여길 비워뒀는데! 응?!"
"황자 전하, 전 여기가 편하옵니다. 부디.."
"뭐라고! 내 호의를 거절하는 게냐?!"
"아, 아닙니다. 송구하옵니다."

술에 취한 3황자를 건드려 괜히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된 종현이 더 이상의 거부는 하지 않고 조용히 3황자의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3황자 시영의 무릎에서는 벌써 여인이 둘이나 앉아 술을 따르고 있었다. 종현이 와서 앉자 3황자가 두 여인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의자를 종현에게로 바싹 끌어당겨 안는다.

"종현아, 내가 조금 뒤 무엇을 하고 있을지 보이느냐?"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보기 싫었던 것 뿐이었다. 보아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래?"

시영이 오싹하게 웃고는 이내 종현을 상 위에 눕히고 손목을 잡아 고정시킨 뒤, 종현의 입술을 자신의 손으로 한번 쓱 훑은 뒤 다시 묻는다.

"이래도?"
"이, 무슨.. 무슨 짓입니까!"
"처음 본 날부터 네가 마음에 들었다 종현아. 곱디고운 얼굴에, 가녀린 몸에. 네가 오늘 나의 선물이다. 갖고 싶은 선물을 말하면 준비해 온다 하였지? 네 몸이 갖고 싶구나."
"싫, 싫어..."
"싫다 한들 어찌하겠느냐. 너는 이미 붙잡혀 있는데."

3황자 시영이 웃으며 종현의 옷고름을 풀려는 그때였다.

쾅 - 쨍그랑 -

조용히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구석에 앉아 있던 8황자 민현이 술상을 별안간 뒤엎어 버렸다. 잔이 깨지고 술이 쏟아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얼음보다 차가운 얼굴로 상석으로 걸어가 3황자 시영의 오른손목을 한손으로 비틀어 꺾어 버리고는 그의 품에서 울고 있던 종현을 거칠게 빼냈다.

"으아악! 황민현! 무슨 짓이냐!"
"8황자!"

3황자의 고통에 찬 비명과 황태자의 놀람에 가득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현은 종현의 손목을 붙잡고 연각 밖으로 나가버렸다. 종현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 가기를 약 십 분. 마침내 민현이 한 곳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종현은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손목을 붙잡힌 채 서 있었다.

"괜찮으냐."

다정한듯 무심하게 물어 오는 민현에 종현이 더 서러워져 참으려던 울음이 터져버리고 만다.

"흐윽... 끅.... 흑...."

민현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당황스럽게 쳐다보다가 이내 종현을 품에 안아서 토닥토닥 달래준다.

"괜찮다. 여긴 우리밖에 없어. 울고 싶은 만큼 울어라. 여기서 나가면 이렇게 울지 못할 게야.."

민현의 따뜻한 품에 안겨 울기를 한참이었다. 민현이 도리어 미안해질 정도로 종현은 정말 펑펑 울었다.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내가 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8황자님이 나서지 않으셨으면 현실이 되었을 끔찍한 미래가 떠올라 그저 속상하고 서러울 뿐이었다. 한참을 더 울고 나서 종현의 눈물이 간신히 멎었다. 민현에게서 떨어지니 이제야 보이는 제 눈물로 흠뻑 젖은 민현의 옷. 하필 오늘 연하늘색 옷을 입어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종현이 당황해서 손을 뻗어 물기를 털려고 하였다.

"아, 아,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이미 눈물이 비단에 다 스며든 건지 아무리 털어도 하나의 변화도 없다.

"이제 좀.. 진정이 된 것이냐?"
"....예. 감사합니다."

이제야 주위를 둘러 보니 8황자를 만났던 정원이다. 제게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 할 때는 언제고, 저를 데려왔는지... 의문에 찬 눈으로 민현을 올려다 보자 민현이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럼, 길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줄 수는 없지 않느냐."
"아... 예. 송구하온데 저는 8황자 전하와 나이가 같사옵니다."
"응, 알고 있다."
"아..... 예에.."

종현이 울어서 새빨개진 눈으로 올려다보며 허락을 구한다.

"꽃을... 조금 보아도 괜찮을련지요?"
"마음껏 보거라."
"감사합니다."

 민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종현이 꽃을 보다가 향기를 맡으러 고개를 숙이고 팔을 걷으니 이내 새파랗게 멍이 든 손목이 드러난다. 민현의 눈이 다시 한번 차갑게 식더니 종현에게 걸어가 손목을 잡았다.

"아...!"
"손목이 왜 이러는 것이냐."

민현이 다른 손목도 걷자 그쪽도 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 아니, 그쪽은 더 심했다.

"어찌하여..!"
"..... 아까 3황자..전하께서 잡으셨을 때 멍이 들었는데, 이곳으로 오다가 왼손목의 멍이 짙어졌습니다."
"내가 붙잡아서 멍이 짙어졌다는 이야기구나. 미안하다. 내게 멍에 잘 드는 약이 있으니, 내 처소의 궁녀에게 일러 약을 가져다 주라 하겠다. 미안하구나."
"황자 전하께서.... 어찌 미안해하십니까. 황자 전하가 아니었다면 저는....!"

종현이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버린다. 눈가가 붉어진 것이 꼭 다시 울 것만 같다.

"...알겠으니 울지 말거라. 탈수로 쓰러질까 염려되니."

민현이 종현을 안고 다시 토닥토닥 달래주었다. 울지 말거라, 속삭이며 말이다.

"이제 이 곳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도 된다. 자, 여기 이곳을 들어오는 열쇠니라. 이건 복사본이고, 원본은 내 처소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다시 눈가가 붉어져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를 받아든 종현이다.

"아, 그리고.. "

민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금 떨어진 붉은색 꽃에게로 걸어가 조심스레 몇 송이 꺾어 종현에게 주었다.

"군자란이다. 원래 1월~3월에 피는 꽃인데 10월이 다 된 지금에도 피었구나. 너에게 주라고 핀 것이겠지."

이내 문을 열어 종현에게 나가자 손을 내미는 민현이다. 손을 잡아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 종현이 손 대신 말을 건넸다.

"...나인들이 오해합니다."
"아... 알겠다."

민현이 머쓱하게 손을 거두어 들이고는 앞장 서 정원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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