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7. 00:03

Christmas of Orpheous(오르페우스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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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WARTS! 2017. 11. 6. 17:37

HOGWARTS! 9

일주일 후, 아침을 먹던 종현의 앞에 커다란 우편물 꾸러미가 툭 떨어졌다.

"어, 빗자루 벌써 샀어?"
"엥? 내일쯤 사려고 했는데. 뭐지? 내꺼 맞아?"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받는 이의 이름을 찾아보니 틀림없이 "​​​​​​김가의 종현에게" 라 적혀 있었다. 보내는 이의 이름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짝 꾸러미를 들춰보자 은빛 찬란한 무언가가 보였다. 설마, 중얼거리던 종현이 조심스레 포장지를 전부 뜯었다. 이윽고 모습을 보인 것은 날렵하게 빠진 긴 흰 자작나무 몸체에, 은으로 SIVERDART 라고 필기체로 새겨져 있었다. 종현이 포장지를 완전히 뜯는 순간 근처 학생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개중에 고학년들은 실버다트인 것을 알아채고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와, 빗자루 한번 멋지네."
"어? 저거 실버다트 그거 아냐?"
"실버다트?! 그, 엄청나게 비싸다는?"

입을 떡 벌린 채 상황을 지켜보던 민기가 조용히 빗자루를 다시 꾸렸다.

"전교에 굳이 유명인사 될 필요는 없잖아."

그러더니 빗자루 꾸러미를 슬쩍 들어올리고 그 상태로 품에 안고 기숙사로 질주했다. 종현의 황당한 표정이 뒤따랐다.

"뭐야, 저 자식? 쟤 어디가?"

그러더니 손에 들었던 토스트를 내려놓고 종현도 민기의 뒤를 따라 달렸다. 남은 것은 그리핀도르 테이블의 웅성거림과 종현의 먹다 남은 토스트 뿐이었다.



-



"아오, 헉, 힘들어, 죽겠네...!"

암호를 대고 그리핀도르 휴게실에 들어와서야 멈춘 민기를 따라잡느라 체력을 소진한 종현이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 종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친 기색이 없는 민기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휙휙 둘러보았다.

"어디 숨길 곳 없나?"

그러더니 눈을 반짝이고는 남자 기숙사로 뛰어 올라갔다. 종현이 한숨을 푹 쉬고는 따라 올라갔다. 민기가 커튼을 젖혀 빗자루 하나를 딱 숨길만한 공간을 찾아냈다. 빗자루를 넣으니 안성맞춤이었다. 커튼을 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보였다.

"자, 이제 안심해도... 어라? 이게 왜 여기 있지?"

커튼에 검은 잉크가 묻어 커튼을 다시 젖혀보니 민기의 잃어버린 잉크가 거기 있었다. 민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잉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턱 -

종현이 민기를 제지했다.

"뭐야, 왜."
"이상해."​



민기가 종현을 돌아보았다. 종현은 얼굴을 찌푸리며 숨을 헉헉 댈 때는 언제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와 심각한 얼굴로 잉크를 응시하고 있었다. 머글 태생인 만큼 배경지식이 마법사 집안 아이들보다는 적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터라, 최근 읽은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엊그제 읽은 <특별한 가문들>이라는 책에서 비아르가에 관한 내용을 읽은 민기가 손을 내렸다.
비아르가는 마법계의 유일무이한 인어 가문이다. •••• ...그들은 인어의 힘을 받아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 만약 비아르가의 후손이 진심으로 위험을 경고한다면, 결코 허투로 넘기지 말 것.

"이 잉크.. 잘 봐봐."

종현의 말을 듣고 민기가 다시 한번 잉크를 천천히 살폈다. 분명히 봉인이 되어 있는데, 미세하게 검은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무 작은 양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뭐야? 대체 무슨.."

민기의 말은 종현에게 들리지 않았다.
종현은 며칠 전 제 페리스테라이트이 묻어 있던 잉크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봉인이 되어 있는 이상한 잉크, 그렇다면 누가 만졌을 리는 없고. 흘러 나오는 검은 형체, 어머니의 경고, 그리고 자신의 감. 이 모든 것이 뜻하는 건...

"흑마법."
"에? 뭔 마법?"
"흑마법이라고! 빨리, 뛰어! 아무 교수님이나 데려와!"
"내, 내가? 혼자? 너는?"
"잉크병 또 어디로 새나 지켜봐야 할 거 아니야.. 빨리, 뛰라고!"
"어, 어어! 잠깐만 기다려!"

말이 끝난 동시에 민기가 뛰기 시작했다. 기숙사를 나서 조금 뛰다 보니 포터 교수님이 보였다. 민기는 이것 저것 따질 새 없이 포터 교수님을 잡았다.

"교수님, 허억, 그, 그리핀도르, 흑마법 잉크요!"
"응? 알아듣게 이야기해. 무슨 말이야?"

포터 교수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민기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핀도르에서 이상한 잉크가 있는데, 그 잉크에서 이상한 게 흘러나오고... 하여튼, 종현이가 위험해요!"

누구인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포터 교수님이 그리핀도르 기숙사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뛰는 사이, 그들보다 앞서 뛰어가는 이가 있었다.​


"비밀번호!"

민현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아는 사람이라는 것에 안심한 민기가 외쳤다.

"맨드레이크!"

민현이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 시점, 그리핀도르 휴게실에서는 이상한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잉크병이 작게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종현이 지팡이를 꺼내 들고 머릿속으로 제가 아는, 몇 가지 되지 않는 주문들을 떠올렸다. 진동이 심해지자 종현이 눈을 감고 떠오르는 주문을 아무거나 하나 외치려 했다.

"스투페 - "
"프로테고!"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와 제 손을 저지하고서는 주문을 외쳤다.

"거기서 기절 마법을 쓰면 어떡해, 멍청아!"

민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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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6. 17:32

년북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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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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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4. 13:2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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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WARTS! 2017. 9. 17. 23:13

HOGWARTS! 8

"종현! 오늘 나랑 잠깐 연습하자. 시간 괜찮아?"
"네, 그럼요! 몇시에 어디에서 뵐까요?"
"오후 네시에 그리핀도르 휴게실에서 보자. 퀴디치 경기장 쓰겠다고 후치 부인께 미리 말씀드려 놓았어."
"그럼 그때 뵈요!"

수업시간이 다 되어 급하게 멀어지는 종현을 바라보던 리처드가 피식 웃었다. 안하겠다더니, 퀴디치 규칙 익히고 경기 몇번 보니까 확 달라지는구먼... 올해는 우리도 우승컵 노릴 수 있을까. 종현이 사라진 곳을 보고 있던 그가 수업 종이 울리자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본인의 수업 교실로 이동했다.

이후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 4시.
종현은 일찌감찌 휴게실에서 리처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도중에 경기 규칙 복습도 할 겸 도서관에서 빌려온 <퀴디치의 역사>를 읽었다.

"퀴디치의 역사?"

문득 목소리가 들려와 종현이 고개를 들어 누구인지 올려다 보았다. 리처드였다.

"열심히 해서 보기 좋네. 가자."

리처드가 얼굴 한가득 웃음꽃을 피우고 말했다. 약간, 내새끼가 이렇게 열심히 한답니다!! 라고 하는 듯한, 뿌듯함이 담긴 미소였다.

퀴디치 경기장은 종현의 생각보다 작았다.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퀴디치 경기장을 한번 휙 둘러보자 리처드가 물었다.

"왜?"
"아...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작은 것 같아서요."
"다들 그러더라. 대체 얼마나 큰걸 기대한거야? 너무 크면 나는것도 힘들어. 대신, 퀴디치 월드컵은 훨씬 큰 곳에서 하곤 해."
"아, 책에서 봤어요! 진짜 크던데. 그렇게 크진 않더라도 절반 크기는 되는 줄 알았어요..."

종현이 말을 흐리자 리처드가 인상을 살짝 구겼다 폈다.

"이 사람아, 그렇게 크면 너 스니치 어떻게 찾으려구요. 작고 빨라서 잘 보이지도 않을텐데."
"그렇긴 하네요... 하핫."

리처드가 커다란 상자를 하나 꺼내 왔다.

"규칙은 알지? 오늘은 공을 직접 다뤄볼거야. 상자 열께. 조심해."

"얘가 퀘이플. 나를 포함해서 3명의 추격꾼들이 이 공을 쫓아다니면서 상대편 골대에 넣을거야. 너는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는 공이야. 파수꾼 한 명은 우리 팀 골대 앞에서 수비하고 있을거고. 한번 득점할때마다 10점씩이야."

종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갈색에 둥글게 파인 공이 퀘이블, 조용히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 공이 블러저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공이지. 이 공의 역할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빗자루에서 떨어뜨리는거야. 몰이꾼 두 명이 잘 쳐 내 줄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항상 조심하는게 좋아."
"맞으면 심하게 다치나요?"
"글쎄. 머리 맞았다는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고.... 팔 맞으면 부러지기밖에 더 하겠냐. 팔 부러진거는 병동에서 하루 쉬면 금방 나으니까 괜찮아."

블리저, 조심할것. 종현이 다시 한번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정보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칵 -

"네가 신경써야 하는 공, 골든 스니치."

드디어 스니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에, 금으로 칠해진 공.

"스니치를 잡으면 150점 획득과 동시에 게임이 끝나. 스니치를 잡는다고 무조건 이기는거는 아닌 거, 알지? 상대팀이 우리보다 160점 이상 앞서 있으면 스니치 잡아봤자.. 소용없어."

"스니치는 굉장히 빠르고 작아서 잘 안 보일거야. 만약에 경기중에 무언가 반짝거리는게 보였다! 싶으면 그게 스니치야."
"스니치..."

리처드의 손 위에 놓인 스니치를 멍하니 바라보던 종현이 입을 열었다.

"한번... 잡는거 연습해봐도 될까요?"
"그래. 빗자루는?"
"아직 못 샀어요... 오늘은 학교 빗자루 빌려왔어요. 님부스 2000."
"빗자루는... 아니다. 이따가 얘기하고, 일단 그거로 하자."

종현이 빗자루를 타고 땅을 박차고 오르자 리처드가 조심스레 스니치를 날려보냈다. 그리고는 아직 비행술이 불완전한 종현을 반신반의하는 듯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으아..."

스니치를 잡기는 무슨. 종현은 빗자루가 익숙하지 않아 쩔쩔매고 있었다. 간신히 사용법을 대충 익히고는 스니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스니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무언가 반짝 하고 지나간 것이 종현의 눈에 보였다. 종현이 스니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스니치가 앞에 보여서 손을 뻗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조심스레 속력을 조금 더 높이고 팔을 한번 더 뻗자 종현의 손에 스니치가 닿았다. 잽싸게 낚아채고 지상으로 착륙했다.

"...대단해. 빗자루 때문에 헤맨 것 치고는 빠른 걸? 10분 36초 걸렸어."
"빠른 편인가요?"
"아마도? 빗자루 감 잡았을 때가 7분쯤 됐을 때니까."
"...하핫."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다시 연습하자."
"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종현은 누군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예민하게 구는 탓일 거라며 머리를 흔들어 애써 찝찝한 느낌을 떨쳐냈다. 리처드가 빗자루에 대한 말을 꺼냈다.

"빗자루는 뭐 살거야?"
"글쎄요, 레바 생각중이에요. 레바 809요."
"괜찮네. 최신모델이고 너한테 잘 맞겠어."
"다음 시합 전까지 사 놓을게요."

그래.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새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암호는?"
"인어의 눈물."
"땡."
"아, 맞아 바꼈지. 내 정신 좀 봐. 음... 맨드레이크?"
"정답."

뚱뚱한 여인이 초상화를 움직여 들어갈 통로를 내 주었다. 인어의 눈물을 듣는 순간 종현은 한동안 잊고있었던 페리스테라이트를 떠올렸다. 필통에 계속 넣어 다니고 있었는데, 잘 있을까 싶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종현이 바로 남자 기숙사로 뛰어 올라갔다. 가방을 들고 침대 위에 모두 쏟아 필통을 찾았다. 긴장으로 떨리는 손을 한번 꽉 쥐고 필통을 열었다.

"아, 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었다. 펜 형태의 푸른 돌이 보였다.
다만, 달라진 게 한가지 있다면 검은색 잉크가 묻어 있었다. 필통 안에 있는 다른 것들은 묻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확히 페리스테라이트에만 묻은건지. 조금 수상쩍었지만 종현이 아무 생각 없이 넘겼다. 페리스테라이트가 멀쩡하니 되었다.





"빗자루가 얼마쯤 하지?"
"응?"

나갔다 와서는 제 건너편 소파에 앉아 뜬금없이 빗자루 가격을 묻는 민현을 친구 알폰소 휴버트가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알폰소는 고급스러운 이름에 맞게 정말 귀족적으로 생긴 아이이다. 백금발에 뽀얀 피부, 붉은 입술, 마른 체형, 큰 키와 잘생긴 얼굴. 알폰소가 입을 열었다.

"너 얼마전에 빗자루 샀잖아. 뭐더라, 완전 비싸고 최신모델인 그거."
"내꺼? 실버다트(SilverDart)?"
"어어, 그거. 그게 얼마였는데?"
"그게.... 얼마였더라. 내가 산게 아니라서..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왜?"
"....그게 보통 빗자루 열 배가 넘는 가격이라더라."
"....뭐?"
"..."
"그러면 뭐, 레바 809 이런거는 실버다트 가격의 1/10 도 안된다는 얘기야?"
"그렇지."
"레바가 싼건지, 실버다트가 비싼건지..."

민현의 혼잣말에 알폰소가 울컥하며 옆에 있던 쿠션을 민현에게로 집어던졌다.

"씨발, 돈지랄 좀 하지 마! 둘 다 비싼거야! 니네 집 돈 많은거 자랑하냐?!"

쿠션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민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쿠션을 옆에 내려놓았다.

"먼지나게 왜 집어던지고 난리야. 돈지랄 좀 하면 다 너처럼 싫어하냐?"
"...무슨 뜻이야, 시발놈아."
"내가 실버다트 선물하면 싫어할까? 돈지랄한다고 생각할까?"
"...누구한테?"
"그리핀도르 수색꾼."

민현의 말에 알폰소가 놀라 그대로 굳었다.

"미쳤냐? 우리 기숙사대표도 아니고 하필 그리핀도르 애한테? 너 어디 아파?"
"아니, 나 완전 멀쩡해."
"시발, 미쳤나봐. 너 걔 좋아해?"
"글쎄."

민현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웠다.

"이게 좋아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
"....천하의 황민현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다니.."
"그러게.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빗자루를 구매하려 편지를 쓰는 민현을 보며 알폰소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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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길 2017. 9. 12. 22:26

황제의 길 5

궁에서 지낸 지도 어느새 1년이 가까이 되고, 종현이 성인이 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 종현의 집안의 성인식은 매우 특이했다. 점쟁이의 집안답게 성인이 되는 날에는 신어를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천신이 빙의한 것처럼 종이에 신탁을 적어 나가게 된다. 물론, 신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이제 제법 가까워진 진상궁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 왔다. 그 옆에 보이는 건 황제가 기거하는 곳인 태황전의 어린 궁녀. 황제를 모시는 궁녀들은 복색도 남달라, 다른 이들과 구분하기 쉬웠다. 그들의 옷의 소매 끝에는 항상 금색 실로 자수가 세겨져 있었다.

"아... 바로 가겠습니다."

종현이 읽던 책을 덮고 태황전의 궁녀를 따라 나섰다. 흐린 날씨 탓인지, 태황전으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하늘이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황제의 길
아름다운 8황자 민현이 걷는 길













.
.
.

"그래, 요즘엔 잘 지내는가?"
"폐하의 은덕 안에서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종현이 황제께서 만족하실 만한 답변을 내놓자 황제가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멋쩍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전에 시영이 일은... 들었는가?"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종현이 움찔했다.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일이 결정된 이후, 민현이 손수 제 처소로 와서 말해주었다. 그는 한 장군을 따라 변방을 수비하게 되었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종현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를 보면, 아니 그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왔다. 그래도 그가 떠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이곳에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이제야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종현이 떨리는 손을 서로 붙잡았다. 황제의 앞이다, 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빠오는 숨을 가다듬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예, 들었..나이다."
".......참 짐이 면목이 없네. 전에 진작 사과했어야 하는데, 이제야 사과해서 미안하오. 내가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켰소이다..."

종현의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자식.. 교육이라니. 교육을 받지 못한것은 아닌지, 대체 무얼하며 컸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종현의 귀에 들린 것은 자신의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황송하나이다."

황제가 종현을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이내 차와 다과를 내오게 하였다. 달콤한 다과가 들어가니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짐이 부른 것은... 그대의 성인식 때문이오."
"성인식... 말씀이십니까."

종현의 머릿속에서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내 성인식? 왜?

"그래, 그대 가문에서는 대대로 성인식 날 신탁을 받는다고 하더군."
"아...예. 맞사옵니다만..."
"그대의 성인식을 내가 볼 수 있을까, 싶어 이리 불렀네."
"소인의 성인식을... 말씀이십니까?"
"맞네. 신탁의 내용이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지? 꼭 한번 보고싶네만."
"아..."

3황자의 얘기를 꺼내더니, 이내 종현의 성인식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황제. 내 성인식이 왜 보고 싶을까... 종현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신탁 받는게 신기해서 그런가?

"예,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소! 정확히 날짜가 언제인가?"
"다음 달의 아흐레 날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게. 그날 다 준비해놓겠네."
"황송하옵니다."


종현이 별 생각 없이 수락했고, 이에 황제가 환하게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
.
어느 새 종현의 성인식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종현은 말 그대로 죽을맛이었다.
황제가 종현에게 성인식 참관을 하고 싶다 물어 성급히 수락한 것이 문제였다. 차기 황제가 황태자가 아니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성인식을 궁에서 한다고 아버지께 연통을 보냈더니, 아버지께서 우려의 말을 담은 편지를 보내오셨다. 혹시나 나라의 부정적인 일이 신탁으로 내려오지는 않을까 이 아비는 염려된단다. 종현은 편지를 읽은 직후에 민현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차기 황제의 신탁이 내려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황궁에 커다란 피바람이 몰아치는 것은 불 보듯 뻔했고, 최악의 경우 종현의 식솔들은 반란죄로 전부 몰살될 수도 있었다. 신탁을 받기만 한 게 무슨 죄냐고? 신탁을 받은 죄, 나라를 어지럽힌 죄. 그리고... 미래가 바뀔 수도 있었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제 성인식 준비가 한창인데 이제 와 황제에게 무르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종현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차기 황제의 신탁이 내려오지 않기를 비는 것 뿐이었다.

"게 누구 있느냐?"

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종현님, 8황자님 드십니다."

문이 열리고, 이제는 꽤 친해진 민현이 들어섰다. 종현이 민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리 힘이 풀려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민현이 달려와 부축했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식은땀이 나지 않느냐."

민현이 종현을 장난스레 타박하다가 얼굴에 흥건한 식은땀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민현의 큰 손이 종현의 이마 위로 올라왔다.

"어디 아픈 게냐? 의원을 불러야겠느냐?"

종현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민현이 종현을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본인은 그 옆에 앉았다. 종현이 민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후우, 한숨을 한번 내쉬고 입을 열었다.

"머리가.. 많이 복잡해서 그럽니다. 괜찮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했길래... 방이 더운 게냐? 여름이 오고 있어서? 침방에 더 시원한 옷을 지으라 말을 해 놓을까?"
"아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러면.. 시원한 차라도 한잔 들자꾸나."

차가운 오미자차와 다과가 나왔다.
시원한 것이 들어가니 한결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종현이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민현이 이를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며칠 뒤가 성인식이라 들었다."

예, 성인식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종현이 말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현이 찻잔을 매만지다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필요한 것 없는지, 안부도 물을 겸 겸사겸사 온 것인데.. 아무래도 내가 시간을 잘못 맞췄나 보구나."
"..."
"그만 가 보겠으니, 좀 누워서 쉬어라. 성인식 날에도 아프면 안될것이 아니냐."

민현이 말을 마치고 일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종현이 조용히 민현을 불렀다.

"황자님."
"응?"

민현이 뒤돌아보았다. 종현이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 말을 이었다.

"황제가... 되고 싶으십니까."

이를 들은 민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민현이 조용히 종현에게로 다가와 왼손을 탁자에 짚고 오른손으로 종현의 턱을 그러쥐며 들어올려 눈을 맞췄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종현은 이때 처음 느꼈다.
이 남자, 위험해.
두 눈은 붉은빛으로 물들은 듯 했고, 입꼬리는 가볍게 비웃듯 미묘하게 살짝 올라가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발톱을 숨긴 맹수 같았다.
그래도 확실히 해 두어야 했다.

"황자이시니까요. 황위 계승권이 있으시니까요. 이 나라를 위한 진정한 어버이가 되실 수 있는지, 감히 궁금합니다."
"한 사람만 나를 믿어 준다면."
"..."
"이번에는 내가 묻지.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무슨..."
"대답하거라."

민현이 위압적인 기운을 뿜어냈다. 종현은 그 기세에 눌려, 입을 열수조차 없었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간신히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끄집어냈다.

"저는..."
"그래."
"황자님을...."
"나를?"
"...."

무어라고 답을 해야할까. 당신이 황위에 오를 몸이라고? 당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내가 아픈 애를 상대로 뭐하는 짓인지, 참..."

평소의 민현으로 돌아왔다.
턱에서 손이 떨어지자, 종현이 저도 모르게 뒤로 살짝 물러났다. 평소에는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를 싫어했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들리지 않았다.

"...무서웠느냐? 눈물이.."

당황한 민현이 종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종현에게 채 닿기도 전에 종현이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살짝 제 눈에 손을 대보니 물이 묻어나왔다. 민현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는 물러났다.

"...쉬거라."

한마디를 남기고 민현이 방을 나섰다.
민현이 나가자마자 종현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가빠오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종현이 느꼈던 그 느낌은 이미 황자의 것이 아니었다. 종현이 보았던 미래가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곧 황궁을 집어삼킬 피바다를 떠올린 종현이 힘없이 쓰게 웃어보였다.
한편, 민현은 종현의 처소를 나서며 본인이 말실수를 했으니 잘 달래달라고 진상궁에게 작게 언질을 주었다. 이후 바로 그의 정원으로 갔다. 천천히 손을 움직여 문을 잠그고, 벽에 등을 기대고 선 그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문득 종현에게 준 군자란이 생각났다. 여전히 붉고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 군자란을 보며 종현을 떠올리던 그가 쓰게 웃었다. 그리고는 한숨섞인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

"너만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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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낙서 2017. 9. 8. 18:20

TEA PARTY (上 : in midnight)

바다를 닮은 푸른색과, 고급스러운 은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화려한듯 심플한, 무척이나 아름다운 카페.이곳은 종현이 운영하는 카페인 "캔버스"이다. 캔버스가 다른 카페들과 다르게 차별화 된 점이 있다면, 서울 변두리의 작은 허브카페라는 점이다. 인적이 많은 지역은 아니라, 종현의 카페 캔버스는 인터넷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주유소가 있는 것도 한몫 했다. 체인점의 일반적인 매장 사이즈 정도 되는 크기의 카페이지만, 종현은 혼자 힘으로 카페를 알차게 잘 꾸려 가고 있었다. 카페의 메뉴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또 다르게 보면 있을 것 다 있었다. 간단히 차와 간식류, 식사류로 나눌 수 있는데, 차는 홍차, 캐모마일 밀크티, 여러가지 종류의 과일 가향 우롱차, 그리고 계절차가 있었다. 간식류는 허브쿠키, 허브 빵 등 여러가지 종류의 허브 쿠키와 빵이 모인 세트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사류에는 오므라이스와 로즈마리 스파게티가 있었다. 종현의 카페에 직원이 한둘이라도 더 있었다면 메뉴가 더 늘어났을 텐데, 혼자 운영하고 가끔 부모님께서 거들어 주시는 탓에 더 욕심내어 메뉴를 늘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은 주문을 받아 종현만의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곤 했는데, 이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다음 해에도 종현에게 케이크를 부탁하곤 했다. 이렇듯 건너건너 찾아 종현에게 케이크를 부탁하는 이는 벌써 스무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원래 종현의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어, 종현의 아버지께서 농사를 짓고 여러가지 농산물들과 농기구들을 넣어 놓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종현이 대학을 졸업하고 어릴적부터 관심이 있던 허브에 관한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그렇지 않아도 땅과 창고를 처분하려 했던 부모님께서는 땅의 대부분을 처분하시고, 창고와 땅의 절반을 종현에게 물려주셨다. 이후 인테리어 공사 끝에 창고는 허브카페 "캔버스"로 탄생하게 되었고, 나머지 땅은 종현이 직접 기르는 허브농장이 되었다.

어느날 오후 9시경. 다른 날들과 같이, 오늘도 종현은 카페의 문을 닫으려고 정리하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이제 장마 끝무렵이라는데, 비 많이도 온다. 잠시 밖을 바라보던 종현이 다시 고개를 돌려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리가 다 끝난 후, 카페에 블라인드를 치고 2층으로 올라가면 있는 제 집으로 가려 하였다. 블라인드를 치려고 유리창으로 다가가고 있는 도중, 검은색 차 한대가 카페와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추더니 시동이 꺼졌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문을 열고 내렸다. 뭐지, 종현이 중얼거리는 사이 남자가 카페 문 앞에 와서 섰다. 비를 쫄딱 맞은 채, 남자가 문을 살짝 열고 종현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진짜 죄송한데요... "
"네?"
"비 그칠때까지만 잠깐 있어도 될까요? 돈은 낼 수 있습니다."
"...네?"
"아, 사실 제 차가 오는길에 방전이 되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사례는 충분히 할게요."

비를 맞아도 잘생긴 얼굴, 훤칠한 키, 그리고 잠시만 있게 해달라는 부탁. 게다가 캔버스는 서울 톨게이트와 멀지 않아 이 근방에는 모텔이나 호텔이 전혀 없었다. 종현이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남자가 들어와서는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비 맞은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종현이 입을 열었다.

"추워... 보이시는데, 마실거라도 드릴까요?"
"아,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허브티 좋아하는거 있으세요?"
"...글쎄요. 허브티는 많이 안 먹어봐서.. "
"가장 무난한걸로 드릴게요. 로즈마리 밀크티 괜찮으세요?"
"당연하죠."

종현이 블라인드를 치고, 문을 잠군 뒤 서둘러 로즈마리 밀크티를 만들었다. 물을 조금 끓여, 로즈마리 잎을 망에 넣어 적당히 우려냈다. 그리고 우유를 뎁혀 차에 넣었다. 꿀을 조금 넣고, 로즈마리 꽃잎을 띄워 장식했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남자가 차를 들어 한 모금 조심히 마셨다.
꿀꺽 -
고요한 탓에 차가 식도로 넘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동시에 종현도 마른침을 삼켰다. 맛이 어떨까, 괜히 긴장이 되었다.

"와, 정말 맛있는데요?"
"아, 정말요? 입에 맞으셔서 다행이네요!"

남자가 차를 마시고 몇 분 뒤에야 종현은 남자가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담요라도 갖다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든 생각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사람이라는 것.

"잠시만 계세요."

종현이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창고에서 담요를 꺼냈다. 그리고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남자에게 건넸다.

"아! 그렇잖아도 조금 추웠는데... 감사합니다."
"뭘요, "

종현이 친구처럼 친근하게 웃으며 이름을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가만, 우리 통성명도 안했잖아.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앗, 죄송합니다."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종현에게 건네주고는 멋쩍게 웃었다.

"다행히.. 안 젖었네요."
"N그룹 마케팅 A팀 부장 황민현...씨?"
"네, 맞아요."

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가 훨씬 넘어가서야 떨어진 급한 출장의 승인 탓에 그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남자를 보며 이름도 참 멋지다고, 종현은 생각했다.

"저는..."
"김종현씨?"
"네? 어떻게..."
"그쪽 명찰에."
"아아..."

종현은 항상 카페에서 명찰을 달고 다녔다. 명찰을 달고 다니지 않으면 "저기요" 부터 시작해서 "아저씨" 까지 호칭이 어마어마하게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중 특히 듣기 싫은 호칭은 "저기요" 였다. 그냥 저기요! 하고 부르면 모를까, 저~기요~! 하면서 기분나쁘게 부르는 손님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명찰을 단 이후부터 종현씨 라고 부르시는 분들이 꽤 되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아, 저요? 저는 스물일곱이요. 종현씨는?"
"동갑이네요. 스물일곱이에요."
"오, 되게 동안이시네요."
"네?"
"스물 셋이나 넷쯤 되실 줄 알았어요."
"아.. 감사합니다.. 하핫."

하핫이라니. 말투도 외모도 참 귀엽다고 민현은 생각했다.

"엣취!"

민현이 재채기를 했다. 감기에 들려는 모양이다.

"...음, 민현씨?"
"네?"
"그.. 상태로 계시다가는 몸살감기 걸리시기 딱인것 같은데, 샤워하고 옷 갈아입으실래요?"
"....네?"
"저 위층에 살거든요. 비... 그치려면 한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차피 차 방전되서 보험회사 불러야 하잖아요. 새벽에 올 리도 없고. 그리고 손님을 카페에 혼자 두고 가는건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
"아.."
"씻고, 갈아입으실 옷 드릴테니 갈아입으시고 주무시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민현이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종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종현이 말했다.

"실내에서 화분에 키우는 허브도 있고, 창고도 생각보다 커서.. 카페보다는 집이 훨씬 클거에요."
"그렇군요."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시원하고 달콤한 허브향이 풍겨왔다. 민현이 무심코 종현에게 물었다.

"무슨 향이에요?"
"아, 유칼립투스 향에다가 스테비아 살짝 섞은 향이에요. 제가 비염이 조금 있어서.."
"어떻게 한 거에요? 식물 그대로?"
"아뇨, 오일 살짝 뿌리고 거실에 디퓨져 있어요."
"판매하는 제품입니까?"
"아뇨, 제가 쓰려고 만든건데요. 그런데 왜..."
"아, 아닙니다."

시원하면서도 이보다 더 달콤할 순 없는 향기, 그의 첫사랑에게서 맡아본 것과 비슷한 향기. 민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쳐 지나간 탓에 첫사랑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유칼립투스가 정말 상쾌한 향을 가진 허브라는건 아는데, 스테비아는 무슨 허브에요?"
"설탕보다 칼로리는 현저히 낮지만 당도는  200배에서 300배나 되는 허브의 한 종류에요. 키우기가 조금 까다롭기는 한데, 저는.. 옥상에서 조금씩 기르고 있어요."
"한국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허브입니까?"
"음.. 글쎄요? 다이어트 용으로 드시는 분들은 꽤 되실텐데... 사람들한테 널리 알려진건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종현이 민현을 뭐지? 하는 눈길로 쳐다보다가 이윽고 화장실로 민현을 안내했다.

"씻고 나오세요. 옷은... 제가 민현씨보다 키가 조금 작아서 맞는 옷이 있을지 찾아 볼게요."
"감사합니다."

민현이 화장실 문을 잠그고 샤워기 물을 틀었다. 쏴아아 - 물이 차갑게 나오다가 점차 따뜻해졌다. 민현이 천천히 몸을 움직여 옷을 벗었다. 적당히 탄탄하게 근육잡힌 몸이 드러났다. 민현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물에 씻었다. 그의 첫사랑은 그를 구해준 사람이었다. 열다섯 중학교 2학년 시절, 그는 한번 버스에 치일 뻔 한 적이 있었다. 횡단보도가 초록불인 줄 알고 두어걸음 내디뎠다가 이내 빨간불인 것을 알아채고 멈춰섰는데, 버스가 빠앙 -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버스가 멈출수도 없는 거리였다. 놀라 잔뜩 굳어있는 민현의 팔이 누군가에게 잡힌 것은 찰나였다. 한 아이가 잽싸게 민현의 팔을 끌어당겼다. 인도 턱에 걸려 넘어져 손바닥을 살짝 쓸렸지만, 다행히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그 아이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상쾌하고 달콤한 향기와, 예뻤다는 것. 이름을 물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금방 잊어버렸었다.

민현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다 씻고 나오니 문앞에 옷이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 반바지 츄리닝에, 딱 맞는 맨투맨. 민현이 입자 곧 종현이 방에서 나왔다.

"맨투맨 사이즈 맞네요? 다행이다 - 저한테 조금 큰 거라서 드렸는데, 사실 안 맞을까봐 조금 걱정했어요."
"딱 맞는걸요, 뭐. 감사해요. 입고 빨아서 돌려드릴게요."
"어유우, 아니에요."

종현이 손사래를 쳤다.

"가지셔도 돼요. 저한테 커서 어차피 잘 못입거든요... 바지는 같은거로 하나 더 있고요."
"그래도..."
"차 드실래요? 뭐 드시겠어요?"

민현이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종현이 바로 주제를 바꾼다.

"단거 괜찮으세요?"
"음, 네."
"과일 뭐 좋아하세요?"
"자몽?"
"자몽 아이스티 드릴게요. 잠깐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종현이 부엌으로 다가가 냉장고에서 미리 잘라놓았던 자몽 조각을 꺼내고, 얼음을 컵에 한가득 담았다. 그리고는 물을 끓였다. 종현이 차를 타는 모습을 보고 민현이 다가왔다.

"과일은 미리 잘라두시는거에요?"
"네에. 과일 아이스티는 제가 자주 먹는 편이라서.. 아무리 적게 마셔도 일주일에 서너잔은 마시는 것 같아요."
"아.."

물이 끓자, 종현이 통을 가져와 잎을 꺼냈다. 그리고 물을 다른 컵에 따르고, 잎을 넣어 우려내기 시작했다.

"무슨 잎이에요?"
"홍차잎이요. 이러면 맛이 더 진하고 맛있어요."
"아이스티에 홍차... 신기하네요."
"드셔보셨을텐데. 립*의 아이스티에도 홍차 성분 들어가요."
"아, 정말요? 몰랐어요."

홍차가 진하게 우러나자 종현이 자몽 한 조각을 집어 도구로 꾸욱 짰다. 자몽 즙이 홍차로 떨어지자, 숫가락으로 잘 섞고는 스테비아를 조금 넣은 후 얼음이 들어 있는 컵에 홍차를 부었다. 자몽을 한조각 더 들어 한번 담갔다 빼서 위에 얹었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민현이 한 모금 마셔보더니 눈이 커졌다. 기존의 아이스티와는 다른, 더 진하고 더 달콤한 맛.

"와..."
"괜찮아요?"

종현이 긴장된 상태로 물어왔다. 사실, 저를 제외한 누군가에게 과일 아이스티를 대접한 것은 처음이라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맛있어요. 허브는 마냥 쓰고, 깊이있고, 뜨거운 음료라고만 생각했는데 방금 생각이 바꼈어요."
"맛있다니 다행이에요! 사실 과일 아이스티 대접한건 민현씨가 처음이거든요.. 장마철 지나가면 메뉴로 넣어서 판매해도 되겠다."

웃으며 신나하는 종현을 보고 민현이 경악했다.

"이 메뉴를 지금까지 썩히고 있었던 거에요?! 과일 여러종류로 해서 판매하면 진짜 잘 팔리겠는데요? 아님 과자랑 세트로 판매해도 좋겠네요."
"헐, 과자랑 아이스티 세트. 아이디어 괜찮은데요? 아이스티가 상큼하니까.. 과자는 마냥 달게 가도 좋겠다. 음, 아니면 보통으로 가서... 조금만 달아도 궁합이 잘 맞겠네요. 아이디어 고마워요!"

말을 끝내자마자 종현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홍차를 더 우려내고, 우연찮게도 바로 전날 시범삼아 구워둔 몇 종류의 쿠키를 내왔다. 덩달아 민현도 이리저리 움직였다. 종현이 내 온 차통을 줄지어놓고, 다 우려진 홍차를 차통의 개수만큼 컵에 옮겨 담았다. 가장 먼저 타진 차는 아이스티계의 대표 주자, 복숭아. 역시 복숭아는 성공적이었다. 복숭아와 가장 어울리는 것은 라즈베리 쿠키였다. 그 다음, 레몬, 포도, 오렌지를 홍차와 접목시켜 본 결과 결국 복숭아와 자몽만을 세트로 출시하기로 했다. 쿠키는 라즈베리 쿠키 그대로.

"그럼 내일부터...."

종현이 신이 나서 움직이려다 피곤해 보이는 민현을 보고 멈칫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쉬시겠어요?"
"어... 네.."

민현이 눈을 비비며 대답을 하자, 종현이 곧바로 민현이 오늘 묵을 방을 안내해 주었다. 흰 벽지에 보이는 갈색 계열의 침대, 자그마한 책상, 그리고 옷걸이.

"손님 방이에요. 주무세요. 저는 조금 더 있다가 자야 할 것 같아요."
"잘자요, 종현씨."

졸림이 가득해 무심결에 나온 민현의 중저음에 방문을 닫고 나가려던 종현이 흠칫 뒤돌아보고는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종현의 뺨이 약간 붉어진 것 같은 건 민현의 착각이었을까?

"아, 피곤해..."

지방 인사와의 딱딱한 미팅, 장시간의 운전, 그리고 고장난 차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민현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몸을 움직여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 눈이 서서히 감기더니 살며시 잠에 빠져들었다. 어디선가 은은하게 허브향기가 퍼지는 듯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그 향기에 민현이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참고 ; 카카오페이지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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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WARTS! 2017. 9. 2. 15:18

HOGWARTS! 7

"아흑.."

종현이 다시 일어났을때는 벌써 다섯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깼니?"

종현이 일어나자 한 여인이 종현에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종현에게 물약을 주었다.

"..폼푸리 부인이세요?"
"그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병동의 폼푸리 부인이었다.

"제가 왜 여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몇시에요?"
"성격 급하기도 하셔라. 일단 지금은 대략 다섯 시간 지나서 오후 세시 조금 안되었고, 너 비행술 시간에 90도로 수직낙하 해서 오른팔목이 나갔고. 긴장했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건지,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기절했다가 지금 일어 난 거고. 너 기절해서 네 친구가 여기까지 업어다 줬고. 정신은 어디다가 두고 다니니?"
"...."
"어휴, 정말... 물약이나 먹어. 이거 먹고 두어시간 더 자다 일어나서 저녁 먹으러 가. 팔 금방 붙을거야."

종현이 투명한 액체가 든 잔을 받아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번에 쭉 삼켰다. 수면 유도제가 섞였는지 금방 다시 나른해지며 눈이 감겨왔다.

"저녁 만찬 전에 일어날거야. 푹 자렴."

종현이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세시간 뒤였다. 종현이 일어나자 폼푸리 부인이 다가와 내일까지는 손을 조심하라고 일러준 뒤 가도 좋다고 말했다. 종현이 병동의 문을 나서는 순간.

".....네가 왜 여기있어?"
"어? 그... 다쳤잖아, 나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던 황민현이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으니까 신경 꺼."
"팔... 많이 아파?"
"괜찮다고."

민현이 팔을 언급하자 괜시리 욱신거려오는 듯 했다. 종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잡자 민현이 더욱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런 민현을 종현이 짜증스럽게 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첫 만남때도 무장해제술로 제 지팡이를 뺏어가고는 성분을 모두 분석한 적도 있었다. 잘못 떨어졌으면 더 심하게 다쳤을 수도 있었을거라는 생각에 종현이 순간적으로 욱하며 말을 내뱉었다.

"갈 길 가시라구요 고귀한 황가의 후손분. 왜 그렇게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내 지팡이에 무슨 불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쪽과 엮이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고요. 나 쓰러지기 직전에 내 옆에 있던건 그쪽이었음에도 나 업어다 준건 민기고요. 앞으로 아는 척 하지 마세요."
"아니 저기..."

민현이 당황해서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종현이 찬바람을 쌩 일으키며 지나가 버렸다. 민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 참, 저를 업고 뛴 건 그 머글출신 친구가 아니라 나인데. 지팡이는 진짜 실수로 놓친거고.. 민현이 아까 지팡이를 놓친건 정말 실수였다. 왜인지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재수없게 굴었던 것 뿐이었다. 이런 본인의 모습에 당황스럽기는 민현도 마찬가지였다.

"어, 종현아!"

기숙사로 돌아오자 저녁 먹으러 나갈 준비를 하던 민기가 반색하며 반겼다.

"괜찮은 거야?"
"어.. 아마도?"
"아마도는 뭐야. 팔은 다 붙은거야?"
"으응."
"아까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빗자루 제대로 타 본적도 없는 애가 급강하를 하질 않나, 땅에 몸을 패대기치질 않나, 그리고는 정신을 잃질 않나.. 니 옆에 있던 걔 때문에 더 놀랐고.. 어휴."
"응? 내 옆에? 황민현?"
"어어. 걔. 걔가 너 쓰러지자마자 업고 뛰었어. 후치부인이 근처에 가기도 전에 너 받쳐들고 달렸다."
"무슨 소리야, 나 업어다 준거 너 아니야?"
"얘가 뭐라니. 황민현인가? 슬리데린 걔라니까."

진짜? 종현의 머릿속으로 아까 민현에게 홧김에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아아... 내가 뭘 한거지..

벌써 몇 번 저녁 만찬을 먹었지만, 호그와트의 만찬은 훌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갖가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 중에서도 후식이 일품이었다.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고 달콤짭조롬한 후식들이 꽤 많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종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감자튀김과 함께 나오는 치킨샐러드. 호그와트의 감자튀김은 정말 완벽했다. 얇지만 겉은 바삭 안은 촉촉, 감칠맛에 짠맛과 약간의 단맛이 첨가되어 학교밖에서는 도저히 맛 볼 수 없는 맛이었다. 이틀에 한번꼴로 저녁마다 나오는 감자튀김은 종현을 행복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늘 저녁에는 종현이 좋아하는 감자튀김이 오리지널, 로즈마리 두 버전으로 나와서 우울했던 종현을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밥을 배불리 먹고 나오니 민현에 대한 생각이 종현의 머릿속에 다시 맴돌았다.

하지만 다행히 민현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수업시간에는 민현이 시작 직전에 들어와 종이 치자마자 나가버렸고, 복도에서도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기에 폭풍전야같이 조용한 일주일이 지나갔다.

"종현아, 종현아!"
"응?"
"퀴디치 선수 모집한대! 수색꾼 한명! 지원할거지?"
"...엥? 무슨 소리야. 내가 퀴디치에 왜..?"
"이 사람아, 90도 수직하강해서 떨어지는 지팡이 잡고 고작 팔 하나 나갔으면 가능성 충분히 있네요."
"얘가 뭐래냐. 시합 뛸 때마다 팔 부러지라고?"
"아니, 빗자루 잘 타는건 배우면 되는거지."
"...."

종현은 퀴디치 팀에 들어갈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종현! 네가 수직낙하해서 지팡이 잡았다며?"

먼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걸어오는 퀴디치 주장, 몰이꾼 리처드 루였다.

"...어... 네, 맞긴 한데 전 퀴디치 할 생각이 없 - "

종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처드가 종현의 손을 덥썩 잡았다.

"종현! 그리핀도르의 수색꾼이 되어줘!"
"...예?"
"예라고 했다. 너 대답한거야! 고마워 정말!"
"아니 그게 아니-"
"고마워 진짜! 올해는 우리도 우승컵 노려볼 수 있겠다!"
"...."

얼떨결에 그리핀도르의 수색꾼이 되어버린 종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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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WARTS! 2017. 8. 21. 22:07

HOGWARTS! 6

종현이 어머니께 편지를 보내고, 며칠 후에 어머니의 백조, 실크가 잉크와 편지와 함께 도착했다. 편지 겉면에는 "혼자 조용히 뜯어 볼 것" 이라고 적혀 있었다. 민기에게 잉크를 전해 주고는 화장실에 가서 살짝 편지를 뜯어 보았다.

종현에게
종현아, 마법부는 쉬쉬하고 있지만 우리 세계 어딘가에서 어두운 사건들이 터지고 있는 것 같구나. 그렇지 않으면 포터 같이 유능한 오러를 호그와트에 보낼 리가 없어. 사실 엄마도 네 편지를 받고 확신했단다. 포터가 교수로 갔다는 소문은 꽤 있었지만, 장관님께 여쭤보니 임무 나갔다는 답변밖에 받을 수가 없었어. 포터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너도 알다시피 웬만한 사태도 다 진압할 수 있는 사람이야. 정신도 조종당하지 않을 테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든 꼭 포터나 교장께 말씀드려라.
. 사실 엄마도 모르는 일이었어. 네 편지를 받고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보니 네 말이 맞더구나. 너에게서 4대 올라가서 계시는 나의 할머니, 너의 조할머니의 동생이 바람을 핀 적이 있다더라. 아이를 낳으신 기록까지 있어. 하지만 이 아이는 어디서 무얼하는지, 이름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 하여튼 그래. 황가의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황가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꽤, 높구나. 엄마가 여러 방향으로 조사해 볼게.
. , .. 일이구나. 혹시나 싶은 마음에 머글 잉크를 사서 보낸다. 머글 물건들은 누군가 손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니까. 네 물건중에서도 갑자기 잃어버리는 물건이 생기면 꼭 말해주거라. 머글 물건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대체 구입해서 실크편에 보내마.
네 아버지는 이제 조금 진정이 되셨어. 마법사를 머글학교에 보내려고 하다니, 정신 나간 짓이지. 내가 결혼하기 전에도 말했건만, 참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집에 돌아올 때가 되면 웃는 얼굴로 맞아 주실 거야.
. 아무리 즐거워도 가끔씩 엄마가 생각나면 편지를 써주렴.
사랑을 담아, 엄마가.

편지를 읽은 종현의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그냥 짐작으로 별 생각 없이 무슨 일이 있냐 던져본 건데, 의외의 답이 와서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모른다고 하실 줄 알았다. 아니, 아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무언가 어두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잡혔다. 학교에서 공부만 해도 되는 걸까. 무언가 대비를 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쾅쾅쾅 -

"김종현! 뭐하냐? 똥 싸? 변비야?"
"꺼져라.. 아니거든?"
"그럼 뭐해? 빨리 나오기나 하셔."
"예에..."

민기가 밖에서 뭐하냐고 묻는 통에 종현이 밖으로 나왔다.

"아, 미안. 진짜 변비였냐?"
"아니라고!"

종현이 이걸 민기에게 말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주머니에 슬쩍 편지를  집어넣었다. 어머니의 추측이니까, 공연히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으니.

"다음시간 뭐야?"
"비행술."
"아아.. 맞다. 저번에 지겹도록 이론만 잔뜩 배우고 이번주에 실습한댔지."

민기가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종현이 넌 빗자루 샀어?"
"뭐하러. 퀴디치할것도 아닌데."
"하긴..."

비행술 수업도 슬리데린과 함께이다. 첫주에 살펴보니, 변신술, 마법의 역사, 마법, 어둠의 마법 방어술, 약초학, 비행술, 천문학, 마법약 이렇게 아홉가지 과목들 중 어둠의 마법 방어술, 비행술, 마법약, 천문학 네 과목이 슬리데린과 함께였다. <호그와트의 역사>를 읽어보면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은 항상 라이벌 구도였는데, 왜 이 두 기숙사를 붙여놓은건지 종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선의의 경쟁 하라는것도 아니고. 사실 역사를 조금만 파 봐도 경쟁 수준이 아니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잖아?

"자, 외쳐보세요. UP!"
"UP!"
"UP!"
"UP!"

비행술 담당 교수님인 후치 부인을 따라 UP! 을 외치자 땅에 있던 빗자루가 손으로 슉 들어왔다. 이에 민기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헐, 대박."

신기해하는 민기를 보고 종현이 피식 웃었다. 마법세계는 앞으로 놀랄 일들이 더 많을텐데, 여기서 놀라면.. 허허.

"그럼 이제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땅을 박차는겁니다.  준비됐죠? 자, 하나, 둘, ㅅ- "

후치 부인이 셋을 외치려는 순간 종현과 민현이 한박자 빠르게 땅을 박차고 올라왔다.

"뭐야, 너."
"뭐긴. 그리핀도르다."
"아, 응..."

민현이 종현을 보자마자 당황해서 뭐냐고 물었다. 이에 종현이 그리핀도르라 대답하자 도리어 민현이 더 당황해버렸다. 민현이 빗자루의 고도를 높였다. 후치부인이 아직 셋을 외치지 않아 둘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땅에 발이 붙어있었다.

"거기 슬리데린! 내려와! 그리핀도르, 너도!"
"종현아..!"

민기가 조그맣게 종현에게 어서 내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걸 보고 민현이 피식 웃었다.

"참, 눈물겨운 우정이네."
"뭐?"
"눈물겹다고, 너랑 쟤."

민현의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그 끝에는 민기가 있다.

"..무슨 뜻이야?"
"별 뜻 없는데."

그냥 비꼰거라고, 기분 나쁘니까. 민현이 뒷말을 조용히 삼켰다.

"쓸데없는 소리좀 하지마. 불쾌하니까. 민기랑 나랑 그냥 친구야."
"와, 그걸 용케도 알아들었네?"
"야."
"왜. 한대 치겠다, 아주?"

민현이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다.

"칠 수 있으면?"
"내가 너 곤란하게 하는 게 빠를텐데."

말을 마치자마자 민현이 지팡이를 꺼내 종현의 지팡이를 겨누었다.

"아씨오!"
"뭐하는..!"

종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현의 주머니에서 지팡이가 휙 빠져나갔다. 그러고는 민현의 손을 스치고는 날아갔다.

"어이쿠, 이런. 내가 아직 잡는데는 익숙하지 않아서. 미안해서 어쩌나?"
"이..."

종현이 잠시 민현을 쏘아보고는 지팡이를 잡기 위해 하강했다.

"...무식한거야, 겁이 없는거야?"

저기 떨어져도 안 부러질텐데, 어디 부러지는건 너일것 같은데. 민현이 급강하하는 종현을 보고는 혀를 찼다.
한편, 종현의 머릿속엔 지팡이를 잡아야 햐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저게 부러지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다른 이들이야 지팡이가 망가지면 아쉽지만 자신에게 맞는 다른 지팡이를 사면 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종현은 비아르가이다. 그리고 지팡이 안에는 아리아의 비늘이 주 재료로 들어 있었다. 다시 구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비아르가의 후손은 오직 아리아의 비늘이 들어간 지팡이만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팡이를 받아내야 했다. 몸은 고치면 되지만, 지팡이는.. 종현이 이를 악물고 속도를 높였다. 안돼, 지금 겨우 이주일 째인데 여기서 내 마법을 끝낼 수 없어.
아래로 - 아래로 -
하강하던 종현이 마침내 손을 뻗어 지팡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빗자루를 팽개치고 바닥으로 굴렀다. 아슬아슬했다.

"아흐윽...."

팔이 부러진듯 싶었다. 팔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오른팔을 왼팔로 받치고 있어도, 지팡이는 안전하게 종현의 손에 꼭 쥐어져 있었다. 지팡이를 보고 긴장이 풀린 종현이 힘없이 미소지었다. 멀리서 후치부인이 무어라 외치며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종현의 옆으로 놀란 얼굴의 민현이 착지했다.

"야!"

갑자기 종현의 눈 앞이 아른거렸다.
어지러웠다.

"김종현! 왜 이래! 괜찮아? 정신 좀 차.."

털썩.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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